로드리고의 아랑훼즈 협주곡: 기타의 진한 감성을 담은 스페인의 서정시
진한 스페인의 감성이 잉글리쉬 혼의 애잔한 선율을 타고 흘러나오면 곧이어 한 편의 서정시를 읇는 듯 기타 솔로가 느린 아다지오의 템포에 맞춰 낭낭한 목소리로 읍조리는 2악장. 전세계 클래식 음악팬의 마음을 사로잡는 로드리고의 아랑훼즈 협주곡입니다.

눈을 감아도 떠오르는 아다지오의 선율
기타라는 악기는 우리 주변에서 심심치않게 볼 수 있는 악기이지만 막상 클래식 음악에서는 만나기 쉽지 않은 악기입니다. 그래서 이번 편에서는 기타 음악의 대표곡인 스페인 작곡가 로드리고의 기타 협주곡 아랑훼즈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해요.
드라마나 영화에서 감정을 울컥하게 만드는 장면이 나오면 종종 등장하는 이 곡은 실제로 전곡을 들어본다면 2악장의 아련한 선율이 더 명확하게 머릿속을 파고들게 됩니다. 그리고 영화에서 본 이미지가 사라지고 나서도 그 아름다운 선율은 우리 마음속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 여운을 남겨둡니다.
작품 배경: 사랑과 상실의 아픔을 담다
아랑훼즈 협주곡은 스페인 작곡가 "호아킨 로드리고(Joaquín Rodrigo, 1901-1999)"가 1939년에 완성한 작품인데 놀라운 사실은 작곡가 로드리고가 세 살 때 디프테리아로 시력을 거의 잃었다는 점입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작곡가가 아랑훼즈란 도시의 아름다운 풍경과 감정을 이토록 멋진 음악으로 표현해 내다니, 정말 놀랍지 않나요?

아랑훼즈(Aranjuez)는 마드리드 근처에 있는 스페인 왕실이 여름 별장으로 주로 사용한다는 왕궁이 있는 도시로 유명해요. 아름다운 정원으로 유명한 이 도시의 모습을 음악으로 표현한 이 곡에는 아주 슬픈 개인적 아픔이 담겨 있어요.
로드리고가 이 곡을 작곡할 당시, 아내 빅토리아는 첫 아이를 유산했고, 부부는 깊은 슬픔에 빠지게 됩니다. 빅토리아는 훗날 "아랑훼즈 협주곡에는 우리 가족의 비극과 상실감, 그리고 그 고통을 초월하려는 노력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고 하네요. 2악장의 애절한 선율에 이런 많은 감정이 녹아들어 있었던 것이죠.
음악 구조
아랑훼즈 협주곡은 총 3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기타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입니다. 악장별로 살펴볼까요?
1악장: Allegro con spirito (활기차게)
경쾌하고 활기찬 리듬으로 오케스트라와 기타가 주고 받으며 시작하는데, 스페인 전통 무곡 '파반(Pavane)'의 형식과 리듬을 차용해서, 기타의 화려한 테크닉을 돋보이게 하는 부분이에요. 마치 아랑훼즈 궁전의 정원을 산책하는 듯한 가볍고 명징한 느낌을 줍니다.
2악장: Adagio (느리게)
이 곡에서 가장 유명한 2악장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사용되며 이 곡을 모르는 사람들도 그 멜로디는 흥얼거리게 하는 부분인데요, 인간의 애잔한 목소리를 닮은 잉글리시 호른의 느린 선율로 시작하며 곧이어 기타가 이 주제를 이어받아서 진행하게 됩니다. 깊은 슬픔과 그리움, 사랑의 감정 등이 섬세하게 표현된 곡으로 한번 들으면 절대 잊을 수 없어요. 하지만 악장의 중반부로 접어들면 열정적인 카덴차(독주 부분)가 스페인 특유의 정열을 열정적으로 연주합니다.
3악장: Allegro gentile (우아하게 빠르게)
마지막 악장은 다시 밝고 경쾌한 분위기로 돌아오는데 역시 스페인 민속 무곡의 리듬을 바탕으로 한 활기찬 느낌을 줍니다. 삶의 명제는 슬픔을 딛고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 것인듯, 이 곡의 마지막 부분에는 슬픔을 딛고 일어서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명반 추천
- 나르시소 예페스(Narciso Yepes) & 스페인 국립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 기타 협주곡의 역사적인 명연주로 꼽히는 버전입니다. 테크닉과 감성의 균형이 완벽해요.
- 페페 로메로(Pepe Romero) & 아카데미 오브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 - 로드리고 본인이 가장 좋아했다고 알려진 연주로, 특히 2악장의 감정 표현이 뛰어납니다.


마무리: 우리 일상에 스며든 아랑훼즈의 선율
시대를 초월한 명곡 아랑훼즈 협주곡, 어떠셨나요? 개인적인 상실의 아픔을 음악으로 승화시킨 로드리고의 이야기는 우리에게도 위로와 공감을 줍니다.
힘든 일이 있거나, 반대로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했을 때, 또는 그냥 조용히 사색에 잠기고 싶을 때 한번쯤 이 곡을 들어보세요. 시공간을 뛰어넘어 울려 퍼지는 아름다운 선율이 여러분에게 특별한 감성을 선사해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