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is Day!/5월

역사 속 오늘 - 5월 30일 : 1962년 전쟁의 상흔을 어루만져 줄, 브리튼의 <전쟁 레퀴엠> 초연

문화훈수꾼 2025. 6. 18.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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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 역사 속 오늘, 5월 30일은 단순한 하루가 아닙니다. 바로 20세기 최고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히는 벤저민 브리튼(Benjamin Britten)의 '전쟁 레퀴엠 (War Requiem)'이 세상에 처음 울려 퍼진 날이기 때문입니다.

 

<전쟁 레퀴엠 War Requiem>

 

1962년 5월 30일, 제2차 세계대전의 포화로 폐허가 되었던 영국 코번트리 대성당의 재건을 기념하는 헌당식에서 브리튼의 작품이 초연되었습니다. '전쟁 레퀴엠'은 단순한 추모곡을 넘어 전쟁의 참상과 화해의 메시지를 담아 전 세계인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벤자민브리튼-영국작곡가-전쟁레퀴엠
깔끔한 영국 신사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브리튼

폐허 위에서 피어난 화합의 메시지

코번트리 대성당은 1940년 11월, 나치 독일의 대공습으로 처참하게 파괴되었는데, 2차대전 종전 후 영국 국민들은 폐허가 된 성당을 전쟁의 상징으로 보존하는 동시에, 그 옆에 새로운 성당을 짓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는 과거의 아픔을 잊지 않되, 미래를 향한 희망과 화해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서였는데, 이 역사적인 새 성당의 헌당식을 위해 당시 영국을 대표하는 작곡가였던 벤저민 브리튼에게 기념식에 연주할 작품을 위촉하ㅔ 됩니다. 반전주의자이자 평화주의자였던 브리튼은 이 작품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는데, 레퀴엠(진혼 미사)는 원래 라틴어로 된 기도문이 정해져 있는 곡이었지만 그 전통을 따르지 않고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참전했던 영국의 반전 시인 윌프레드 오언(Wilfred Owen)의 시를 레퀴엠 중간 중간에 삽입하는 파격적인 구성으로 작곡을 하게 됩니다.

 

코번트리대성당-폐허-재건축
다시 지어진 대성당의 모습

음악으로 구현한 '적과 아군'의 화해

'전쟁 레퀴엠'의 가장 큰 특징은 세 명의 독창자에게 부여한 상징적인 역할인데, 브리튼은 이 작품을 영국인 테너, 독일인 바리톤, 그리고 러시아인 소프라노를 위해 작곡하게 됩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주요 교전국 출신 성악가들이 한 무대에서 노래함으로써, '적'과 '아군'이라는 경계를 허물고 음악을 통한 화해와 용서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 것이죠.

 

초연 당시 테너는 브리튼의 동반자였던(당시 동성애가 금지되었던 영국이어서 공식적으로 연인이라고 하지는 않았던) 피터 피어스(Peter Pears)가, 바리톤은 독일의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Dietrich Fischer-Dieskau)가 맡았습니다. 소프라노는 러시아의 가리나 비슈네프스카야(Galina Vishnevskaya)가 내정되어 있었으나, 당시 냉전 시대의 정치적인 문제로 소련 당국의 허가를 받지 못해 아쉽게도 초연에 참여하지 못하고 영국의 헤더 하퍼(브리튼 오페라에서 주인공을 많이 맡았던)가 대신하게 됩니다. 비록 완전한 형태의 '화합'은 이루지 못했지만, 작품에 담긴 브리튼의 숭고한 의도는 초연 현장에 있던 모든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브리튼-전쟁레퀴엠-초연녹음-역사적명반-피터피어스-피셔디스카우-헤더하퍼
초연 실황이 음반으로 출시되어 있습니다

시대를 넘어선 평화의 울림

'전쟁 레퀴엠'은 대규모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소년 합창단, 그리고 세 명의 독창자가 어우러져 장엄하고도 섬세한 음악을 만들어냅니다. 라틴어 가사가 자아내는 엄숙함과 오언의 시가 던지는 전쟁의 비극성이 교차하며 듣는 이로 하여금 전쟁의 무의미함과 평화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게 합니다.

 

1962년 5월 30일의 초연은 단순한 음악회를 넘어, 전쟁의 상처를 예술로 승화시킨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전쟁 레퀴엠'은 전 세계 곳곳에서 연주되며, 분쟁과 갈등이 끊이지 않는 세상에 깊은 성찰과 함께 평화의 메시지를 끊임없이 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