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디자인의 가구, 이를테면 디자이너의 체어는 하나의 오브제로서 마치 예술 작품처럼 공간의 분위기를 바뀌줍니다. 예술 특히 많은 미술 작품들은 과거 왕이나 귀족 또는 높은 계급의 성직자들이 자신의 공간을 좀 더 품위있고 권위넘치게 또는 좀더 화려하게 혹은 성스러움이 충만하게 보이게 하기 위해 제작되어 왔다는 사실을 생각해본다면 실로 예술과 예술작품처럼 잘 만들어진 가구사이에 경계를 긋는다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래서 이번 편에서는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이 블로그의 독자분들을 위해 거의 예술의 경지에 이른 가구들(또는 예술가가 만든 가구)에 대해서 살펴볼까 합니다.
예술가를 품은 영화 속 가구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명작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에는 무척이나 그로테스크한 모습을 한 가구가 등장합니다.
주인공 4인조들이 즐겨 찾는 Milkbar에는 여성의 나체를 모티브로 삼은 테이블과 의자들이 놓여 있습니다. 영화의 분위기처럼 무척이나 괴기스러운데(?), 이 가구들은 기성제품은 아니고 영화를 제작할 당시에 신소재로 각광받던 파이버글라스라는 소재를 이용해서 영화 소품팀이 감독의 지시로 직접 제작을 했습니다.
물론 이 가구들의 디자인은 감독이나 세트디자인팀이 직접 낸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은 아닌데, 그렇다면 이런 충격적인 디자인의 가구를 어떻게 만들게 되었을까요?
이 가구 디자인의 원형은 영국의 미술가 알렌 존스의 조각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술가의 대표적 조각 작품들인 Hatstand, table and chair등에서 컨셉을 차용해 온 것인데요, 원래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아티스트 알렌 존스에게 자신의 영화에서 예술가의 작품을 사용하고 싶다고 요청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하면서 어쩔 수 없이 작품의 분위기를 따와서 세트디자인팀이 직접 유사한 가구를 만들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원래의 조각 작품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60년대와 70년대 영국 사회를 관통하던 성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당시 대중문화 속에 소비되고 있는 섹슈얼리티를 포착한 팝 아티스트로 알려진 알렌 존스의 이 작품들은 새로운 영화를 준비하던 스탠리 큐브릭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알렌 존스의 작품보다 더 노골적인 외형의 영화 속 가구들은 영화의 주인공 알렉스와 그의 일당들이 가지고 있던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는 당시 주류 사회의 편견에 관한 모습을 과장스럽게 풍자한 것이라고 보여집니다.
또한 큐브릭은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실제라고 보여져 왔던 많은 것들은 사실 환상 일뿐'이란 표현을 인터뷰에 쓰고 있고, 그가 이런 키치적인 팝아트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이런 예술이 가지고 있는 사회에 대한 역기능에 대한 도발적인 시도로 해석하는 비평가도 있습니다.
예술가가 만든 가구
위에서 살펴 본 알렌 존스 외에도 많은 아티스트들이 가구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이번 편에서는 미국 추상 예술의 거장, 미니멀리즘 아티스트로 잘 알려진 도널드 쥬드의 작품을 소개할까 합니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던 도널드 쥬드(물론 작가는 자신이 이런 식으로 분류되는 것을 탐탁치 않게 생각했다고 하는데...)는 자신의 예술적 미학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대상 중 하나가 가구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위의 이미지 속에 보이는 조각 작품은 이미 가구의 형상을 많이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가 아래 이미지와 같은 가구를 만든다고 하는 것이 전혀 놀랍지 않습니다.
미니멀리즘의 특징인 간결한 라인과 질감을 그대로 드러나는 표면 처리 등은 고급 원목 가구 디자인의 방향성과도 매우 일치합니다. 특히 도널드 쥬드가 자신의 조각에서 보여주는 선과 면의 비례 그리고 명확한 색상 선택 등의 장점은 그가 디자인한 가구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으며 이렇게 미니멀한 감각이 옮겨진 가구를 보고 있노라면, 도널드 쥬드의 조각 작품과 가구 작품 사이에 어떤 경계를 긋는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보입니다.
마무리
여러분들은 어떤 가구를 좋아하시나요? 일상의 공간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가구를 향한 예술가들의 사랑이 더 궁금하시다면 댓글을 달아주세요. 그에 관한 더 많은 이야기들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어요!!